유대 민족은 오로지 하나님을 믿은 신앙 때문에 다른 이방 민족들의 문화나 종교를 가지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기 위해 로마가 주는 시민권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 로마와 유대 관계
유대인들은 로마 시민권을 갖게 되면 파격적인 세금의 면제와 로마의 법에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권리등 여러가지 이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시민이 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 시민이 되면 하나님이 주신 유대의 전통, 조상 대대로 지켜온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고 또 모두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많았습니다.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어디에 살든지 1년에 2드라크마를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의 세로 바쳤으며. 그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1년에 한번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을 방문하는 성지순례도 자신들이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의무처럼 여겼습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의 정체성은 그들이 속해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유대교에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을 억압에서 해방시켜 줄 메시아의 탄생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투스는 다른 이방 신들의 종교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유독 예루살렘 성전에 만은 아내 리비아와 함께 헌금을 했다고 전합니다. 또 유대인들에게는 어느 정도 사법권을 허용하였습니다. 안식 일을 유대의 전통대로 지킬 수 있도록 하였으며 본인이 원하면 군대도 면제해 주었지요. 단지 사형 제도 만은 로마에서 파견한 총독의 허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빌라도 총독이 재판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또한 로마는 유대인들의 자극을 피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수호하기 위한 군사들은 예루살렘이 아닌 좀 떨어진 가이사랴에 주둔 시켰으며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는 헬라인들과 동등하게 무역과 장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로마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며 자유 하게 했는데 왜 유대 나라는 그 시절을 그렇게 힘들게 로마에 반항하며 살았을까요?
그것의 해답은 헤롯 가문에 있습니다. 로마는 유대에 유했지만 중간에서 로마의 유한 것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며 유대인들을 많이 힘들게 한 에돔인 헤롯 가문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2. 로마의 군대와 시민권
로마가 제국으로 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우수한 군대를 가진 것입니다. 로마 군은 전쟁
역사에서도 손 꼽힐 만큼 전쟁에 용맹한 병사들이 많았고 우수한 장비들 뛰어난 장군들을 배출하였습니다. 로마 군인은 16세에서 45세까지 복무할 수 있었고 강제 징집이 아닌 스스로 자원 입대였습니다. 군인이 되면 로마의 시민권과 여러가지 좋은 혜택이 주어졌으므로 로마에게 정복당한 나라의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이기도 했습니다.
혹 비 시민 권자 인 병사가 25년을 군인으로 근무하면 동판에 로마 시민권이 새겨진 것을 받을 수 있었고 그는 명예로운 퇴역 병사가 되는 것입니다. 명예로운 '베테랑 퇴역병사' 말입니다. 군인들은 좋은 급여와 권리 때문에 멀리 소 아시아에 배치되어서도 탈영이나 이탈은 심하지 않았고 군의 법칙도 잘 유지 되었다고 합니다.
로마의 시민권은 로마에 협조하거나 로마를 위해 공을 세운 이방인들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때론 돈을 많이 주고 시민권을 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로마 시민권을 받으면 여러가지 특혜가 있었는데요. '신분의 상징' 토가를 걸칠 수 있었고요.
토가는 로마의 고유 의상으로 천을 몸에 감는 방식의 옷으로 로마 남성들이 궁중에 들어갈 때 입는 예복이었다. 한때는 평민들도 입을 수 있었지만 너무 불편하여 점차 입는 것이 줄어들었고 고위 관직에 있는 자들이 예의 와 격식을 갖추었을 때만 입게 되었다고 합니다.
관리에 임명되거나 투표할 권리도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장사를 하는데 매우 유익했다고 합니다. 같은 시민 권자와 결혼도 할 수 있었고 혹 죄를 지었어도 고문이나 구금을 함부로 당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재판 받을 권리도 있고 각종 노역과 세금에서도 면제되었다는 것입니다..
3. 로마의 이중성
로마 제국이 한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가 도로건설이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부터 2천 500년 전에 만들어진 도로(1번~8번 국도)인데도 지금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견고한 도로입니다.
이 도로들은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 후 5세기까지 약 800년 동안 만들어진 가도입니다.
로마 가도는 군대의 이동을 빠르게 하려고 만들어진 것인데 모든 도로의 대부분이 마름돌로 만들어졌습니다. 그중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아피아 가도는 그 견고함이 로마 가도의 여왕이라 불리 웁니다. 로마의 도로는 무역과 통행 군대의 이동 그리고 도로가 이어진 정복지의 여러 보물과 식량 그리고 포로들이 운송 되는 길 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인구 30%는 노예였고 다수는 정복 전쟁에서 끌려온 이들이었습니다. 로마는 귀족과 시민 만을 위한 완벽한 계급 사회였습니다.
로마는 낙원과 지옥이 늘 공존하였습니다. 부유한 평민이나 귀족들은 모두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주인을 위해 온갖 잡일과 목숨까지도 바쳐야 했습니다. 2세기 중엽 로마의 정복 사업이 멈추었을 때 로마시는 혼란이 왔습니다. 매일 들어오던 노예 시장에 노예들이 없게 된 것입니다. 노예 공급에 차질이 생기자 노예는 비싼 가격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유가 없는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다가 잡히면 멋진 나무들이 우거진 아피아 가도의 나무들 옆으로 십자가가 세워져 처형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로마 제국에 들어오는 자들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도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들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십자가에 처형되는 노예나 죄수들이 많았다는 것이겠죠.
이렇게 아름다운 도로를 만들어 전세계를 제국으로 통하게 한 로마는 그 길로 인해 많은 노예들의 한을 만들어 내었고 가장 아름다운 아피아가도를 보면서 감탄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 아래에 매달린 십자가의 죄수들에게는 죽음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참고 : 기독교로 보는 세계 역사,역사 지리로 보는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