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반도의 로마는 BC 732년 경 로무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형제에 의해 세워져 약 500년 가까이 귀족과 평민 사이의 계급 투쟁을 겪으며 그들 스스로 법 기반 위에 기틀을 다져가고 있었습니다. BC 264년 로마는 굉장히 풍요롭고 해군력이 막강하여 북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무대로 700년 가까이 영화를 누려온 대표적인 국가 카르타고와 시칠리아 섬을 놓고 전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포에니 전쟁'입니다.
1. 포에니 전쟁의 발단
포에니 전쟁은 BC 264년에서 BC 146년 사이에 로마와 카르타고가 벌인 세 차례의 전쟁을 말합니다. '포에니 란 말은 라틴어로 '페니키아인' 이라는 뜻이 랍니다. 이것은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도시였으므로 로마인들이 카르타고를 그렇게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초창기 로마는 해상 국가 카르타고와는 전혀 충돌이 없었습니다. 로마는 이탈리아의 전형적인 대륙 국가였고 카르타고는 바다에서 배를 이용하여 무역을 하는 해상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바로 아래에 붙어있는 카르타고의 영토였던 시칠리아 섬의 작은 나라 시라쿠사의 아가토클레스 왕 시절 그를 섬기던 이탈리아인 용병 마메르티니가 아가토클레스 왕이 죽은 후 그리스의 식민지인 같은 시칠리아 섬에 있는 메시나 시를 점령한 것이 발단이 됩니다.
마메르티니 용병들은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다가 메시나 시에 가까이 가서 그들이 잠시만 머물게 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됩니다. 메시나 시민들은 이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휴식 할 수 있는 거처도 주고 식량도 풍성히 제공해 줍니다. 근거지 없이 떠돌아 다니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용병들은 친절한 메시나 시민들에 의해 평안해지자 다른 마음이 든 것입니다. 그들은 깊은 밤에 평화로운 메시나 시민들을 기습 공격하여 모든 남자들을 죽여버리고 여자들은 포로로 잡아 자신들의 아내로 삼아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용병들은 메시나 시를 거점으로 하여 주변 도시들을 약탈하며 해적질까지 하게 됩니다.
이들의 만행을 지켜 보던 시라쿠사의 왕 히에로 2세가 자기 선조의 용병들이었던 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이들의 만행을 응징 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나서게 됩니다. 마메르티니와 용병들은 수적으로도 작고 훈련되지 못한 용병이어서 시라쿠사 군대에게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결국 자신들이 너무 도 불리한 상황이 되자 마메르티니와 용병들은 대륙에서 서서히 성장하고 있는 로마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같은 이탈리아 인이요 같은 라틴계라는 이유를 이야기 하면서 말입니다.
2. 로마의 입장
로마의 원로원들은 도적 떼와 같은 이들의 만행을 전해 들은 바가 있기에 원군 파견을 거절합니다. 그런데 이들 용병들이 물러서지 않습니다. 로마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게 도움을 요청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당시 카르타고는 시칠리아 섬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었고 섬의 제일 위에 있는 메시나 까지 카르타고가 차지하게 된다면 로마는 바로 코앞에 카르타고 군에게 로마의 영토를 고스란히 노출 시키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기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됩니다. 결국 원로원과 로마 시민의 대표들인 호민관들은 용병들의 요청을 받아 들여 참전을 허락하게 됩니다.
3. 제 1차 포에니 전쟁(BC 264~BC 241)
1 차 포에니 전쟁은 장장 23년 동안 진행됩니다. 이탈리아 아래에 붙어 있는 시칠리아 섬에서 육 전에 강한 로마 군과 해전에 강한 카르타고가 붙습니다. 섬에서 하는 전쟁이니 당연히 해전에 강한 카르타고에게 유리하겠지요. 물론 엎치란 뒤치락 합니다. 그런데 최종 결과는 로마가 승리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카르타고는 아주 오래전 부터 해상 무역으로 돈 버는 능력은 아주 탁월했습니다. 돈이 많으니 그 돈으로 군대를 돈 주고 사온 용병으로 구성했습니다. 자기 나라 백성들이 아닌 외국에서 사온 사람들로 구성된 군대!! 얼마나 용감할까요? 나라를 지켜야 할 애국심이 있을까요?
그에 반해 로마 군은 훈련된 정예 군이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훈련된 정예 부대라 할 지라도 해상에서는 카르타고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로마 군은 머리를 씁니다. 그들은 카르타고를 이길 비밀 병기를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말로 까마귀라 하는 코르부스 입니다.
사다리와 같은 코르부스는 맨 위에는 까마귀의 부리처럼 뽀족한 부리를 만들었습니다. 평소에는 배 위에 높이 세워져 놓았다가 상대방의 배가 가까이 다가오면 그 배를 향해 코르부스를 '쿵'하고 내리 꽂습니다. 내리는 압력에 의해 뽀족한 부리가 상대방 배에 박히게 되면 로마 군인들은 그 코르부스를 건너서 상대방을 무찌르는 것입니다. 배에서도 육지처럼 싸우는 로마 군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로마에게 패배한 카르타고는 지중해의 전략적 요충 지를 모두 잃어버리게 되고 엄청난 전쟁 배상금을 물게 됩니다.
4. BC 246-241년 시리아 전쟁
이렇게 지중해에서는 포에니 전쟁을 하고 있는 시기에 유대 나라를 사이에 두고 남방인 이집트와 북방인 시리아가 또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단 11:6 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단합하리니 곧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가서 화친 하리라 그러나 그 공주의 힘이 쇠하고 그 왕은 서지도 못하며 권세가 없어질 뿐 아니라 그 공주와 그를 데리고 온 자와 그를 낳은 자와 그때에 도와 주던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라
단 11: 7 그러나 그 공주의 본 족속에게서 난 자 중에 한 사람이 왕위를 이어 권세를 받아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BC 250년 경 남방 왕의 딸 베로니케가 북방 왕 안티오쿠스 2세와 정략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안티오쿠스 2세의 본 처인 라오디게가 남방 왕 프톨레미 2세의 딸 베로니케와 그의 아이를 살해합니다. 라오디게는 자신의 남편인 안티오쿠스 2세도 독살 하지요. 이렇게 정략결혼은 실패로 돌아가고 라오디게는 베로니케의 동조 자들을 모두 제거하고 자신의 아들 셀류쿠스 2세인 칼리니쿠스를 왕으로 세웁니다.
이것을 본 이집트의 베로니케의 형제 프톨레미 3세가 누이의 복수를 위해 공격합니다. 프톨레미 3세는 라오디게를 죽이므로 누이의 원수를 갚게 되고 셀류쿠스 2세와는 잠시 평화 조약을 맺게 됩니다.
같은 시기에 지중해를 중심으로 해상에서는 포에니 전쟁이 육지에서는 남방 왕과 북방 왕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니엘이 예언한 세계사는 그의 예언대로 하나 하나 이루어져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2차 3차 포에니 전쟁과 그 시기에 남방 왕 북방 왕의 시리아 전쟁 계속 이어집니다.
참고 : 어성경. 성경통독. 성경과 고대전쟁. 세계사로 이해하는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