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류쿠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는 이집트 2차 침공이 로마의 간섭으로 패배하자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분 풀이를 유대에 쏟아 붓고 갑니다. 그리고 유대에 칙령을 내리는데 그 칙령의 내용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들에게 치명적인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안식 일을 금하고 성전에서 돼지와 같은 부정한 짐승을 제물로 바치고 남자아이들에게 행하는 할례를 금하고 성전에서 음란과 더러운 것으로 더럽히고 율법서를 모두 불태워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사형에 처한 다는 것입니다.
1. 마카비 혁명의 원인
이러한 명령은 유대 전 지역에 전달되었고 유대 지역의 작은 마을 모디인에게 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 작은 마을에도 성전에서 돼지를 잡아 희생 제물로 드리는 예식을 거행하게 한 것입니다.
BC 167년 모디인에 하스몬 가문의 대제사장 마타디아는 그 모든 것을 거부합니다. 그러자 셀류쿠스 왕조에서 사람들을 보내고 다른 제사장이 그 일을 거행하게 되는데 마타디아는 그의 다섯 아들과 함께 성전에서 그 하는 모든 행위를 막고 그들을 처단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과 율법에 열심히 있는 자는 모두 나를 따르라' 라는 말을 외치자 신앙을 고수하고자 하는 많은 유대인들이 그들에게 모여 들었습니다. 마타디아는 자신의 다섯 아들과 함께 반란군을 조직하여 셀류쿠스 왕조 뿐 아니라 헬레니즘을 추구하는 유대인들에게도 맞서 싸울 것을 다짐합니다. 여기에 하시딤들이 가세하면서 반란군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2. 하누카(수전절의 유래)
BC 166년 반란군을 조직한 지 1년 만에 마타디아가 전사하고 반란군의 수장은 그의 셋째 아들인 유다 마카비가 이끌게 됩니다. '쇠 망치' 라는 별명이 뜻을 가진 마카비는 뛰어난 군사적 재능으로 헬레니즘을 따르는 유대인들을 찾아내어 모두 살해합니다.
이에 헬레니즘 유대인들은 셀류쿠스 왕조에게 협조를 구해 마카비 군대를 대항하지만 유다 마카비는 여러 도시에서 연승을 올리며 결국 BC 164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합니다. 마카비 군대는 성전을 정비하여 제우스 상을 파괴하고 유대교의 전통 제사를 다시 부활하게 합니다.
성전을 정화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켜는 등대의 기름을 넣으려니 기름이 부족합니다. 등대의 기름을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새로 만들려면 약 8일 정도가 걸리는데 그 조금 남은 기름으로는 하루도 못 갈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등대를 켰고 하루도 못 갈 것 같은 기름은 새로 기름이 만들어진 8일 동안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기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절기가 하누카(수전절)입니다. 이 절기를 유대인들은 '빛의 축제 '라고 부릅니다.
3. 마카비 혁명의 결과
BC 164년 마키비 군대가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성전을 정화하고 봉헌하던 해 마카비 혁명을 일으키게 했던 원인을 제공한 안티오쿠스 4세가 죽게 됩니다. 안티오쿠스 4세의 죽음으로 셀류쿠스 왕조는 유대에 대해 유화 정책을 쓰게 됩니다. 그러나 마카비는 이것에 만족하지 않았어요. 안티오쿠스 4세의 죽음은 셀류쿠스 왕조에게도 대 혼란을 가져왔으며 이런 기회를 이용해 마카비는 유대의 독립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BC 160년 베레아 전투에서 마카비가 전사하게 되어 마카비 군대도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마카비의 뒤를 이어 마카비 군대를 맡게 된 것은 막내인 요나단 이었습니다. 그는 군대 전술에 능한 유다 마카비와는 다르게 뛰어난 외교 감각으로 여러 위험한 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결국 셀류키드 왕조는 요나단에게 대제사장의 자리를 줍니다. 이때부터 마카비 혁명군의 지도자는 대제사장직을 겸하게 되며 이것은 마카비 가문에 세습으로 이어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러므로 마카비 혁명을 통해 유대는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도 여러가지 변화를 겪게 됩니다.
1) 종교적으로는 셀류키드 왕조의 종교적 박해가 중지 되었습니다. 그들이 강요하던 이방 신에게 제사가 폐 하여지고 예루살렘 성전은 정화되어 다시 유대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회복되었습니다.
2) 경제적으로는 그동안 셀류키드 왕조에게 바쳤던 모든 세금이 없게 됩니다. 유대 나라는 다시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 조와 여러 제사의 예물로 바뀌게 되고 그 십일 조를 통해 재정을 확보하게 됩니다.
3) 정치적으로는 유대에 독립이 인정되었습니다. 요나단의 뒤를 이은 마타디아의 둘째 아들 시몬은 요나단과 같이 대제사장직을 겸하면서 정치와 종교 그리고 군사의 지배권까지 세습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렇게 하스몬 왕조가 유대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세계사 속으로 들어가 '포에니 전쟁'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