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말라기를 끝으로 약 400여 년 간 침묵하고 있으실 때 세계 역사는 엄청난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더(알렉산드로스)가 등장하여 대 제국 페르시아가 차지했던 지역보다 더 넓은 지역을 차지하며 그리스 철학과 동방의 오리엔트문명를 합친 헬라 문화를 전파해 나갔습니다.
1. 알렉산더 대왕
마케도니아를 반석에 세운 왕인 알렉산더의 아버지 필립포스 2세는 왕이 되기 전에 그 당시 그리스 도시 국가 중에서 가장 막강한 도시 국가였던 테베에 인질로 잡혀 있었습니다. 마케도니아와 테베와 휴전을 유지하기 위해 필립포스 2세를 볼모로 보내는데 어린 나이에 주변 국가의 볼모로 잡혀있던 필립포스 2세는 전쟁, 외고, 도시 문화, 그리고 테베의 동맹국인 페르시아 제국에 관한 많은 지식을 몸으로 습득하게 됩니다. 그렇게 인질로 있으면서 그는 테베에서 군대가 재편성 되는 과정을 목격합니다. 필립포스 2세는 후에 마케도니아 왕이 되었을 때에 그리스의 전통적인 군대의 모습을 혁신적으로 개선하여 긴 창으로 무장한 보병 부대를 만들고 기병 부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그 군대를 가지고 그리스의 도시들을 하나 씩 하나 씩 점령하여 코린토스 동맹을 조직함으로 그리스 세계에서 확실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또한 필립포스 2세는 크레니데스라는 곳에서 금광을 발견하여 엄청난 재력까지 확보하는 행운을 얻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에게 금광을 준 그 도시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따라 필립포스라고 바꾸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빌립보 입니다. 이렇게 전쟁과 군사의 천재였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럽게 암살을 당하게 되고 그의 아들 알렉산더가 23세의 젊은 나이에 나라를 물려받게 됩니다.
2. 알렉산더의 어머니 올림피아스.
알렉산더의 어머니인 올림피아스는 필립포스 2세의 5번째 부인이었습니다. 필립포스 2세는 모두 7명의 부인을 맞이하게 되지요. 그러나 정식 왕후는 올림피아스뿐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부인들은 모두 딸들만 낳았는데 올림피아스는 아들을 낳았으니 그랬겠지요? 알렉산더의 자리는 든든했습니다.
그러나 7번째 부인으로 들어온 어린 클레오파트라가 임신했을 때에 아들이 태어나면 그가 후계자가 되어 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위기를 맡기도 합니다. 그때 당시 필립포스 2세가 에우리디케에게 빠져 그를 두 번째 정식 왕후를 만드려고 했습니다.
한 만찬석에서 후계자를 논하는 말을 하는 에우리디케의 숙부에게 알렉산더는 술잔을 집어 던지고 이것을 본 필립포스 2세는 알렉산더에게 칼을 뺍니다. 이것은 알렉산더의 후계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알렉산더와 올림피아스는 외 할아버지 나라로 도망을 가기도 합니다. 결국 클레오파트라에게 딸이 태어나 더 이상의 문제로 진전 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또한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올림피아스는 심령 술에 빠져 있기도 했답니다. 필립포스 2세는 무서운 것이 없는 강한 사람이었는데도 항상 올림피아스 앞에서 만은 두려워하고 눈치를 봤다고 전합니다.
3. 알렉산더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
이렇게 문화와 문명에 관심이 많았던 필립포스 2세는 그의 아들 알렉산더에게 심마쿠스라는 선생님을 붙여 주어 알렉산더는 호머의 일리어드를 알게 되었고 알렉산더가 13세가 되었을 때에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시게 됩니다. 아스리토텔레스는 알렉산더에게 그리스 문학과 예술, 종교, 문명을 가르쳤고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았던 심오한 교리들도 가르쳤습니다. 알렉산더는 헬레니즘의 사도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로 잘 배우고 또한 자신이 정복한 나라에 그것을 잘 전파합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 전]의 기록을 보면 알렉산더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나에게 생명을 죽었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하게 사는 법은 가르쳐 주었습니다."
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을 가르친 교리들을 책으로 펴냈다는 소식을 들은 알렉산더는 스승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불만을 이야기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께
선생님, 선생님께서 직접 구전으로 가르치셔야 할 이론들을 책으로 발표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는 것은 결코 잘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배운 지식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해 버린다면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그들을 능가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권력이나 영토가 아닌 선생님께 배운 지식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다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답장입니다.
내가 가르친 그 지식들은 발표되었다고 말할 수 없소.
왜냐하면 형이상학에 대한 이 책은 내게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읽어보아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오.
4. 알렉산더의 정복 전쟁
알렉산더는 20대의 나이에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알렉산더 아버지 필립포스 2세에게 억눌려 있던 그리스의 어더 도시 국가들은 20살의 어린 왕이 등극했다는 소식에 그를 얕보아 속속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성경에서 데살로니가라 불리는 테살리아가 제일 먼저 반란을 일으키는데 알렉산더가 그 반란을 신속하게 진압함으로 어리지만 얕볼 수 없는 강한 군주로 세계 무대에 알려지게 됩니다. 그 뒤로 아덴이라 불리는 아테네, 스파르타 등의 반란을 모두 진압한 알렉산더는 성경에서 고린도라 불리는 코린트 동맹 회의를 소집해 페르시아를 정복하려는 그리스 적 원정의 총 사령관에 올라갑니다.
알렉산더는 4만 명 정도의 군대를 이끌고 원정을 떠나는데 그 군인들은 모두 고용된 직업 군인들이었습니다. 알렉산더는 그들에게 마케도니아 왕궁에 있는 모든 자금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왕궁 안에 있는 왕의 모든 자금을 급료로 받는 군인들은 빈털터리가 된 알렉산더를 걱정합니다.
"전하!! 전하의 것으로는 무엇을 남겨 놓으셨습니까?"
"나!! 나는 희망이오"
희망이라는 말을 들은 군인들은 받은 급료를 다시 모두 반납했답니다. 앞으로 자신들이 점령할 도시와 페르시아를 점령하면 더 많은 급료를 받을텐데 지금 이렇게 조금 받아서 무엇 하겠느냐는 것이었지요. 이렇게 그들은 알렉산더와 같이 희망을 품고 원정을 시작합니다.
그들은 많은 지중해의 연안 도시들을 정복했으며 여세를 몰아 결국에는 페르시아까지 격퇴 시켰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알렉산더가 점령한 몇몇 도시들을 이야기해 봅시다.
참고 : 성경과 5대제국. 어성경. 성경과 고대전쟁.